엑스레이 검사(위) 등에 쓰이는 방사선은 식품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 살균 처리할 때도 사용된다.
영국에서 날아온 뉴스 때문에 ‘방사선 조사법’이라는 식품 처리 방식이 부쩍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내의 한 식품 회사가 생산해 영국으로 수출한 라면과 스낵 20종류에 방사선 처리 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사실을 포장지에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 식품기준청(FSA)이 수입·판매 금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식품은 잘못 보관하면 썩거나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음식을 안전하고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 꾸준히 개발되었다. 건조·절임·가열 조리·살균·냉장 보관,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방사선 처리 등이 통상적인 가공법이다.
방사선 처리 또는 방사선 조사법(照射法)이란, 음식에 감마선이나 X선 같은 방사선을 쪼여서 부패와 식중독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DNA 분자를 파괴해 미생물을 죽이는 방식이다. 미생물의 대사 과정 중에 생긴 부산물이 만들어낸 유해 요소도 함께 제거할 수 있다.
1905년에 음식에 대한 방사선 처리가 최초로 시도된 이래, 1971년 이후로는 우주 비행사의 음식도 일부 방사선 처리를 하고 있다. 또 의료 기구나 위생 도구를 살균 소독하는 데도 방사선 조사법이 활용된다.
음식 자체의 특성과 죽이려는 미생물 종류에 따라 쪼이는 방사선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FSA측은 방사선 처리 자체가 식품 안전에 우려를 낳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그들도 우리도 방사선에 대해 왠지 불안하고 꺼림칙한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물론 방사선 처리를 했다고 해서 음식이 방사능 물질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일부 성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방사선이 닿았다고 음식 내의 원자들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X선 촬영을 한다고 우리 몸이 방사능을 띠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사선을 쪼이면 효소, 비타민, 음식 자체의 세포 성상, 음식의 향이 바뀔 수는 있다. 과일이나 채소처럼 수분이 많은 식품은 방사선 처리에 적합하지 않다. 미생물이 제거되는 동시에 향과 색깔도 함께 변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낮은 수준의 방사선 처리는 과일과 채소의 숙성을 늦추고 저장 기간을 대폭 늘려주기 때문에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방사선 조사법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대장균(E. Coli 0157:H), 살모넬라, 캄필로박터, 리스테리아균, 쉬겔라 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이 방법에 이의를 제기한다. 방사선 조사 과정에서 생성된 방사성 분해산물이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사선을 쪼이면 극소량의 벤조피렌이나 포름알데히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방사선 조사 식품을 먹은 동물이나 인간에게 피해가 나타났다는 보고는 거의 없었다.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농림부·식약청·질병관리본부·의사협회에서도 방사선 처리 식품을 일단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논란 잠재울 확실한 연구 결과 나와야
방사선 조사법 처리 식품임을 표시하는 마크.
식품 회사들이 생산 과정에서 방사선 처리의 효과를 과신한 나머지 기타 위생 절차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사선 처리를 했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안전을 이유로 낮은 수준의 방사선 처리만 허용되고 있고, 저장 기간이 늘어나는 장점과 별개로 여전히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방사선 조사로 티아민(비타민 B1)과 같은 영양소가 일부 파괴되는 부작용도 있다.
인체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어느새 우리 식탁에 자리 잡은 유전자 재조합 식품(GMO) 처럼 방사선 처리 식품에 대해서도 아직 안전성을 확신하기는 이른 것 같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도 식품의 표시 기준에 따라 방사선이 조사된 식품에는 포장 용기에 방사선 조사 마크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알 권리는 제공하되 안전성은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방사선 처리를 허가받은 식품 회사들은 이 방법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기본적인 식품 위생 요건 충족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논란을 불식할 더 확실한 연구 결과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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