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라듐이 죄 많은 사악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때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과연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많이 아는 쪽이 유리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판단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과학이 죄 많은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파괴의 수단이 된다면 지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 마리 퀴리, 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락 연설에서-
[1]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은 물리학과 화학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오늘날 의학 분야를 비롯해 방사선의 상업적 이용은 바로 라듐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진은 1898년 12월 라듐을 발견했을 당시 퀴리 부부의 모습.
위대한 발견은 나비처럼 천천히 날아온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빛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연과 순간의 이름으로, 그리고 유레카의 이름으로. 그러나 그 우연은 필연이 축적된 산물이다.
영광과 죽음을 동시에 안겨준 라듐
1898년 12월 어느 날 그녀가 잠든 침대 옆에서 어떤 한 물체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연구해 왔던 이 원소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방사선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원소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빛살’을 뜻하는 ‘radius’에서 따와 라듐(Ra: rad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원소와 더불어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몸이 아프고 피곤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다소 의심쩍어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광선이 죽음을 가져올 만큼 치명적인 줄은 전혀 몰랐다. 이 원소의 발견은 그녀에게 커다란 영광, 그리고 죽음을 안겨주었다.
마리 퀴리, 결혼 전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브스키(Marie Sklodowska). 이름만 들어도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과학자다. 최초의 여성 노벨 수상자, 그것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라서가 아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그녀의 학문적 아집과 용기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1995년 4월 20일, 한 부부의 유해가 엄숙한 의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프랑스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프랑스 최고의 명문 소르본 대학과 에펠탑에서 가까운 팡테옹은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만이 묻힐 수 있는 국가유공자 묘지다. 마리 퀴리는 남편의 업적과 명성에 얹혀 이곳에 묻힌 것이 아니다. 순전히 자신이 일군 업적만으로 당당하게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바로 그곳에 여성이 묻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마리 퀴리는 이민자 출신의 과학자였다. 더구나 과학자 집단은 그녀가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배타적이고도 공고한 사회였다. 또 있다. 그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차별 받는 유대인 출신이었다.
마리 퀴리 연구기록 보려면 서명에 동의해야
파리 국립박물관에는 위대한 물리학자 마리 퀴리가 손수 쓴 연구기록들이 보관돼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그 보관실을 감상하려면 그 기록자료에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해 어떠한 손상을 받더라도 박물관을 상대로 고소하지 않겠다는 서명에 동의해야 한다.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우라늄의 반감기가 지구 나이와 같은 45억년이니 그 방사능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방사선의 시대를 연 라듐도 반감기가 1602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 가지 방사능 세척방법을 동원했겠지만 그래도 염려스러운 마음에서 방문객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한편으로는 마리 퀴리의 위대한 과학자적 정신을 방문객들에게 일깨울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방사능, 그리고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살아 있는 교육장 역할을 할 수 도 있다는 계산에서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명을 하고 마리 퀴리관(館)을 둘러본다. 그러나 방사능이라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은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 만큼 마리 퀴리는 방사능 속에 파묻혀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다. 사실 마리 퀴리에게 노벨상의 영광과 죽음을 안겨준 것은 바로 방사능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한 과학 연구에 매진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마리 퀴리는 방사능으로 인해 손에 화상을 입고, 심지어 방사능 과다 노출에 따른 백혈병으로 죽게 될 정도의 위험한 연구를 수행했을까? 목숨을 담보로 한 과학적 연구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질문들을 말이다.
마리 퀴리는 무모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엉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발견의 뒤에는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꿈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신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었다.
방사선은 위대한 여성과학자 마리 퀴리가 인류에게 물려준 위대한 재산이다. 또한 그녀는 방사선이 주는 피해가 무엇인지를 온몸을 통해 직접 우리에게 알려준 과학자다. 어쩌면 그녀는 인류를 위해 스스로 실험 쥐가 되기를 자처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산물 가운데 방사선만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또 어쩌면 방사선만큼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베풀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과학기술도 없을 것이다.
방사선은 현대과학기술의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방사선이 없는 하루는 빛이 없는 하루와 같다”는 한 과학자의 지적처럼 방사선은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나 다름 없을 정도로 현대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사선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 바로 마리 퀴리다.
마리는 대학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물질의 결정을 연구하는 피에르라는 과학자였다. 두 사람은 1895년에 결혼했다. 결혼하기 전 마리가 피에르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통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음 속에 같은 꿈을 살 수 있다면 너무나 멋진 일이겠지요. 당신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우리가 인류를 생각하고 과학을 사랑하는 꿈 말입니다.” 마리 퀴리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휴머니티가 그대로 녹아 있는 편지다.
[2]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한 때 형광을 내는 라듐 시계가 대유행이었다.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에서 시작된 방사선의 상업적 이용의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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